매장과 발굴을 통한 조각논리의 전복

평론가/이원일

  이영섭은 이 시대에 드물게 은둔자적 삶을 살아온 작가다. 한때 승려가 되기로 결심했을 정도로 냉엄한 구도자와 같이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려온 그의 특이한 삻의 태도의 연원은 유년시절부터 형성되어온 무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목수인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장인정신과 어린 시절 조부의 묘비 앞에 놓인 허물어진 화강석(동자석)을 매만지던 기억은 청년조각가의 작업방식과 사고를 결정지을 만큼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불과 물에 대한 집착 속에서의 거의 10여년이란 세월동안 부여잡았던 테라코타 인체작업은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그를 지배해 온 알 수없는 힘에 이끌려 자신의 작업에 대한 논리적 해명 없이 묵묵히 진행되었다.

더욱기 82학번 동시대 작가와는 달리 사회의 권력투쟁과 정치, 경제논리와 동떨어진 강원도에서의 교육환경은 그를 더욱 완벽하게 혼자인 채로 살게 했다. 그러나 마치 다른 인간의 존재 자체를 접해 본적도 없는 은둔자의 자세로 천착해 온 테라코타 작업은 그 조형성과 숙련된 기술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진정 그가 의미를 두고자 한 내면적 욕구와 항상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이방인과 현실이 점차 구체화 되면서 새로운 앎의 과정은 기적적으로 진행되었고 그로 인한 갈등과 고통이 배가 되었던 것이다.

 

형상과 재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

 현실과 실제가 과연 그가 추구해 온 이미지에서 얼마나 먼 것인가를 고민하던 그가 우연히 고달사지 발굴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은 1998년의 일이었다. 발굴현장의 흙은 그가 알고있던 흙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지된 악마적 시간성을 뚫고 마각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맥박이었다. 그렇게 이영섭은 ‘출토’의 의미가 갖는 지정학적, 문화사적 문맥과 그 또하나의 생산성에 전율했고 발굴이라는 ‘행위성’에서 원효의 ‘깨달음’을 일순간 체험한 것이다. 그곳에서 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가마라는 예배실을 박차고 나오게 된 것이다. 즉 발굴현장에서 기술과 기능의 ‘전승자’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연결짓는 중개인으로서의 진정한 ‘조각가’의 역할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가 추구했던 이미지의 감각적인 온전함이 주는 쾌감과 실제에 대한 부족한 인식이 주는 부담감 사이의 부채감이라는 빚을 일시에 탕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매장과 발굴

 이영섭이 차용하게 된 발굴의 행위성은 기억과 관련한 시간의 출발이지만 단순히 ‘잃어버린 시간을’을 찾아 나서는 일차원적인 태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즉 과거라는 시공간을 들여다보게 하는 박물관적 컨텍스트가 아니라 발굴을 전제로 한 매장과 작가의 신체성을 개입시키는 ‘접촉의 고고학’을 제시한다. 마사토위에 이미지를 드로잉한 후 그 형상을 거꾸로 파낸 후 콘크리트을 매장하여 출토시키는 이영섭의 발굴행위는 흔적의 기록이라는 측면을 현재의 시간성과 결합시킨다는 점에서 고고학적, 문화사적 기억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닌 복합적이고 정교한 개념으로 개방되는 행위가 된다. 다시 말해서 정지된 시간의 불가역성을 파기하고 봉인된 시간과 체취를 ‘현재화’시키는 행위성에 의해 매장과 발굴이라는 과정의 문제를 집중시키는 매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콘크리트 속에 내장되는 조선시대의 기와 조각들과 고려청자의 파편들은 그러한 현재성 위에 다양한 층위의 시공간의 ‘차이’를 내포하는 시간관을 제시하는 장치가 된다. 그 파편들이 콘크리트와 충돌하여 역동적인 융합이 이루어질 때 현재와 조선시대 그리고 고려시대의 시공간은 단선적 시간의식을 극복하게 하는 파르메니데스의 생성론처럼 각기 고유한 연상의 사슬을 따라 다른 속도로 전개되어간다.이 지점에서 이영섭의 발굴행위에 동원된 콘크리트라는 매재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어차피 콘크리트라는 재료가 생성되는 방법론 자체가 ‘뒤죽박죽’의 방식을 채택한다는 사실을 주목한다면 이영섭의 작업에서 생산되는 시간성은 과학철학자 미셀 세르가 지적한 것처럼 선을 따라 흐르는 시간이 아닌 ‘단절’ ‘가속도’ ‘균열’ ‘공백’이 팽창하는 중층적 시간성이 됨을 인식할 수 있게된다. 그러므로 ‘얼굴’ ‘아이’ ‘강아지’ ‘출토’등의 명제로 등장하는 그의 콘크리트 작업들은 들뢰즈의 ‘주름’의 개념처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그리고 오늘이라는 멀리 떨어진 세 지점이 갑자기 나란히 존재하는 ‘접힘’의 방식을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짜라투스트라의 ‘정오’를 향하여

이번에 선보이는 이영섭의 신작들은 지극히 비 조각적이다. 전통적인 조각의 문법에서 벗어난 붓기(매장)와 꺼내기(발굴)를 작업의 근원으로 설정하며 이영섭은 콘크리트 덩어리를 통해 에너지의 속성과 소성의 시간을 현재진행형의 시간 속에서 파악하려했다. 어찌보면 그 콘크리트 인물상들이 출토되어 일어서는 과정이 그가 이전에 심취했던 운주사 미륵신앙에서 와불이 일어서는 개념과 궤를 같이 하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상을 ‘세운다’는 미륵사상이 동학사상으로 이어진 것처럼 이영섭의 인물상이 ‘뒤집는다’,‘세운다’는 상징적 의미를 실천할 때 그것은 현대문명의 꽃인 시멘트를 통한 가치 전복의 역설을 꿈꾸게 될 것이다. 다만 그의 신작들이 의식과 기법의 능란한 운용에도 불구하고 도시적 형상이 주는 지극히 역사적, 사적 관념의 문맥에 여전히 갇혀있다는 점은 향후의 과제로 남는다. 보다 폭넓고 현실반영적인 기호들을 수용하여 현재의 리얼리티와 연결시킴으로써 생의 강렬함을 포착해내는 의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현재라는 삶의 실시간대를 일순간 매장(동결)시키고 현대문명의 단면들을 차분히 끄집어냄으로써 그 시간의 화석을 통해 문명에 대한 회고와 반성 그리고 전망을 교차시킬 수 있는 살아있는 물음 말이다. 그 질문을 통해 시간이 스스로를 완성하고 ‘밝은 빛으로 바뀌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 안에서 만나게 되는 짜라투스트라의 ‘정오’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