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섭의 조각 - 한국인들의 원형적 초상

고 충 환(미술평론가)

 

 

 한국인의 원형적 초상, 얼굴 조각가 이영섭의 작업실은 이제는 터만 남은 고달사(高達寺)의 빈터 위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의탁하고 있는 모든 땅이 대체로 그러하겠지만 작가의 작업실에서는 유달리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이 교차하는 시간의 실체가 감지된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하나의 공기로 흐르는 곳, 과거의 터와 현재의 터가 하나의 결로 맞댄 그곳에서 작가는 켜켜이 중첩된 시간의 더께를 걷어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수년 전에 고달사의 빈터에 정착했다. 아마도 현재의 시간이 정지하고 과거의 시간이 흐르는 듯한 그곳의 희박하면서도 아득한 공기가 작가에게 내재된 본성을 건드린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작가의 화두는 시간의 관성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마치 회귀(회향) 본능이란 생물학적 코드에 붙잡힌 연어가 그런 것처럼 본향(本鄕)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허나 이는 그렇게 만만찮은 작업이 아니다.
작가는 그동안 자신의 작업이 현재라는 시간과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닌지, 동시대적인 조각의 요구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음을 토로한다. 이런 의문이 재차 화두가 되고 그 화두가 다시 처음의 의문 속에 답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발굴이 진행 중인 그곳에서 작가는 현재가 아닌 과거 속에서 그 의문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한다.
 여기서 작가가 찾아낸 답이 비록 과거에 속한 것이긴 하지만 동시대적인 조각의 요구를 외면한 것이라곤 보기 어렵다. 대신 그것은 모든 시간의 지층을 관통하는, 시시각각 존재의 소멸을 노리는 시간의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아 현재에도 여전히 감동을 줄 수 있는 어떤 궁극적이고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미의식 같은 것에 가깝다. 그러니까 현재가 비롯된 시간의 샘 같은 것, 존재가 비롯된 원형 같은 것에 가깝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은 환원적이고 회귀적이며, 원형적이고 본질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적이다.
 시대와 존재와 조각의 감각적이고 현상적인 표면이 아닌 이 모두의 저변에 면면히 흐르는 통시적(通時的)인 것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런 원형적인 미의식은 감각적인 표면 현상에 친근함을 느끼는 동시대인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다. 이를테면 신라 토우에 반영된 해학미, 백제인의 불상에 나타난 고졸한 미소, 조선 백자와 분청자기에 나타난 구수한 큰맛과 무기교의 기교가 이런 원형적인 미의식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이는 비록 무의식의 형태로나마 잊혀지거나 상실한 것들을 그리워하는 회향 의식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회향 의식은 자연성 곧 인간의 본성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향수 자체는 단순한 기억보다 더 동적(動的)인 감정으로서 그 속에서 현재가 끊임없이 과거와 소통하는 어떤 심적 계기 같은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견인해내는 원천으로서 마치 백제 민중의 넉넉한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낸 듯한 불상의 고졸한 미소, 고대 그리스의 원시조각에 나타난 아르카익 스마일(archaic smile),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선시대에 적지 않은 수가 제작된 동자석이나 벅수를 꼽는다.
시대가 흘러 잊혀진 탓도 있겠지만, 이런 다양한 석물(石物)들 중 대개는 이름 없는 장인의 손으로 제작돼 장인의 무명과 마찬가지로 당시로서는 예술의 이름조차 얻지 못한 것들이 많다.
 미술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여러 형식적인 틀로부터 자유로운 만큼이나 민중의 무심한 손길과 체취가 강하게 묻어 있다.
존재 본래의 태(胎)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이런 석물들에 새겨진 의지는 예술보다는 삶의 의지에 가까운 것으로서, 요샛말로 내적 필연성과 프리미티비즘(primitivism), 그리고 자연성(단순히 물리적 실제를 의미하기보다는 존재의 궁극적인 원인에 가까운)이 이런 삶의 의지를 추동(推動)했을 것이다.
 실상 자연의 의지에 추동된, 거의 자연이 빚은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이런 원형적 형상의 의도적이거나 인위적인 실현은 엄밀하게는 불가능하다.
여차하면 잘해야 자연에 대한 어설픈 흉내내기나 조악한 골동 취미에 머무를 수 있을 뿐이다. 다만 그것은 인물동기(人物同氣) 곧 자연의 성질과 작가의 성품이 하나의 기(氣)로서 통할 때에만 가능해진다. 이런 인물동기는 논리적인 프로세스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서 소재와의 지난한 싸움에 의해 체득될 때 그 자체 인위적일 수밖에 없는 모든 해법을 허물어 무효화할 수 있으며, 그리고 그로부터 그런 투쟁의 최소한의 흔적만을 남기는 것을 통해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작가가 이런 인물동기를 실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분명한 것은 적어도 작가가 이런 인물동기를 자신의 작업을 추동시키는 멘탈리티로 삼고 있다는 점이며, 실제의 작업에서 그 실현 가능성이 상당할 정도로 엿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이영섭의 작업은 소재의 본성에 자신의 본성을 맞춘 지난한 모색의 흔적인 것이며, 그 자체 꽉찬 형태로서 완결된 것이기보다는 반쯤은 암시의 형태로 방기(放棄)된 것이다. 이런 흔적을 내재한 암시적인 형태 자체는 전통적인 회화에서의 여백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 비어 있는 공간을 보이지 않는 형태로서 채우는 것은 정작 작가가 아닌 관객의 몫이다.
 작업에 있어서 문제는 이렇듯 외관상 비어 있으면서 실상은 채워진(예컨대 팽팽한 김장감이나 어떤 시적 아우라 같은 것으로) 이율배반적인 형태를 체득하고 찾아내는 것에 있으며, 형태와 암시적인 형태를 조율하는 것에 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작업에 대한 끌림은 이렇듯 형상 자체보다는 미처 형상화를 얻지 못한 잠재적이고 암시적인 형태에서 연유하기 쉽다.
이영섭의 작업에서 이런 잠재적이고 암시적인 형태는 마치 자연스런 풍화의 흔적을 보는 듯한, 두루뭉실하게 얼버무린 듯한, 만들다 만 듯한 반(半)형상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치 암각화에서처럼 이런 반형상 위에 선각(線刻)으로서 최소한의 형태를 암시한다.
형태에 대한 구상적인 선입견을 비켜난 이런 반형상에서는 대체로 기교와는 거리가 먼 어눌한 손맛이 느껴지는데, 이런 느낌은 작달막한 아동을 소재로 한 작업에서 더 두드러져 보인다.
 실상 아동에게서 느껴지는 이런 인상은 작가의 모든 모델에게서, 예컨대 모자(母子)상이나 가족상, 그리고 부처에게서조차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비롯한 이 모든 모델에게서 아동의 심성이나 천진난만하고 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로써 이영섭의 작업은 그 레이더가 현재보다는 과거에, 감각적인 표면 현상보다는 시간의 폭력에 휘둘리지 않는 어떤 궁극적인 존재에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역류의 시간 속에서 현재를 끊임없이 과거와 통하게 하는 것, 그리고 이로부터 한국인의 원형적인 초상(얼굴)을 찾아내는 것에 작가의 작업이 갖는 의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