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섭의 조각

평론가/김종길 

아공(我空)과 장엄(莊嚴)
- 이영섭 조각론의 상징과 알레고리

옷은 마침내 벗어 버릴 것이라 결국 사람의 임자는 얼(靈)이다. 
사람의 생명에서 불멸하는 것은 ‘얼나’뿐이다.
_ 박영호 엮음, 『다석 유영모 어록』(두레, 2002)에서

정수리에 불이/ 쏟아지는 시간은/ 꽃이 피는 순간이 아니다. 
_ 시인 황규관, 「정오가 온다」, 『정오가 온다』(삶창, 2015)에서


#1. 현실은 구체적이다. 개인에 있어서나 사회적으로나 그것은 언제나 구체성을 띠고 나타난다. 구체성을 어떻게 파악하며 어떻게 관계하는가에 따라 현실은 드러나기도 하고 왜곡되거나 상실되기도 한다.
_ 미술평론가 김윤수, 「삶의 진실에 다가서는 새 구상」중에서

이영섭 조각론의 시원은 ‘흙’과 ‘불’이다. 그 두 개의 파장이 불구덩이 가마 속에서 회절(回折)하거나, 회오리 돌풍으로 육화(肉化)된 것이 작품이다. 테라코타는 뜨거운 불의 사리(舍利)였다. 그는 1993년 11월 경인미술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 붉은 테라코타를 내놓았다. 흙으로 사람 형상을 빚은 뒤 말려서 불에 구운 그것들은 강렬했다. 결가부좌로 앉은 인물들과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인물들이 다 그랬다. 
미술평론가 이재언은 이때의 작품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작품 스케일과 견고하고 육중한 형태를 가졌고, 심오한 내면적 표현성의 아우라를 느끼게 할뿐만 아니라, 그것은 현실적 고뇌 속에서 정신의 해탈을 상징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탈적 사유와 명상의 섬광들이 광채를 발하고 있는 것 같은 그 모습들은 반가사유상의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고 평가했다. 또 권진규의 조각과 가깝고, 세속적인 표피 이면에서 추구되는 정신의 숭고성을 밀도 있게 빚어냈다고도 했다. 
1994년에 제작한 <황토>시리즈와 <구도>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에서 당시 그가 추구했던 ‘형상조각’의 면모를 살필 수 있다. 형상미술론은 미술평론가 김윤수가 1981년 『계간미술』여름호에 발표한 「삶의 진실에 다가서는 새 구상」에서 출발한다. 그는 ‘구상(具象)’의 관제적 냄새를 지우려고 ‘새 구상’이라 했는데 이후 ‘신형상미술’ 또는 ‘형상미술’로 불렸다. 이 평론은 1980년대 민중미술을 예고하는 하나의 당간지주(幢竿支柱)와 같았고 새로운 형상주의 미학의 원론이었다. 이영섭의 조각들도 ‘삶의 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 시대의 현실을 응집해서 조각에 투영시켰다. “작가는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때의 조각은 ‘묵시(默示)’였다. “내재된 묵시적인 힘을 표현”하는 것이 그의 조각적 목표였다. 그러나 그것은 1980년대의 저항이나 투쟁과는 결이 달랐다. 그가 사유한 묵시는 세기적 종말이라기보다는 헬라어 아포칼립시스(apocalypse)가 뜻하는 ‘감추인 것을 드러내 보이다’, ‘덮개를 벗기다’의 의미에 더 가까웠다. 그는 무엇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1994년은 동학혁명 100주년이었다. <황토> 연작과 <구도>의 작품들이 내재한 묵시의 언어는 그런 역사적 변곡점 때문이 아닐까. 두 개의 <황토> 작품은 건장한 사내가 서 있는 형상이다. 컴아트 그룹이 기획한 <국제교감예술제>(수원, 1994) 출품작은 상체를 벗고 민복 바지를 입은 사내인데, 배꼽 밑으로 두 손을 맞잡고 우뚝 선 모습이 사뭇 숭엄하다. 그 모습에서 동학농민상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다른 작품은 팔짱을 낀 형국이고 동일하게 상체를 벗었다. 그런데 하체는 마치 대지로부터 솟아난 형국이다. 허리춤을 새끼줄로 동여맸으나 그 밑으로는 옷도 넝마도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대지다! 이때 제작된 작품들 중에는 모란미술관 야외에 설치해 놓은 <오월>(1994)도 있다. 테라코타를 브론즈로 캐스팅했다. 다섯 인물상은 모두 상체만 제작되었고 그대로 땅 위에 있다. 그러니 이들도 대지에서 솟았다. 아니 솟아나고 있는 중일 터.  
<황토>와 <오월>의 형상 주체는 ‘민중’일 것이다. <황토>의 ‘황토’는 대지로서의 ‘흙’이면서 또한 동학 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물리친 ‘황토현’의 ‘황토’를 동시에 연상시킨다. 동학의 농민과 오월 광주의 시민은 모두 민중이다. 민중은 시대의 무늬로 상감되며 시대는 민중의 무늬를 상감한다. 조각가 이영섭은 시대와 민중이 줄탁동시(啐啄同時)로 각기 상감되어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를 염원했을 것이다. 그 세계는 동학이 주창했던 개벽(開闢)의 세계일 것이고. 형상(조각)-민중-개벽이라는 세 개의 열쇳말이 섭동(攝動)해서 상징어를 획득하는 것이 그의 조각의 미학적 완성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완성은 ‘형상’이 스스로 잉태되어 대지로부터 솟아날 때 이 현실[娑婆世界]를 뒤흔들게 될 것이었다. 

#2. 흔적-시간의 연속성 : 묻혀있던 과거문명의 파편들을 모아 인체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소멸 되었던 지나간 문명의 흔적들을 찾아내 과거 시간의 의미를 테라코타 파편들로 상징화해 내고 오늘에 대한 현실은 인체의 형상을 단순화하고 재구성하여 표현함으로써 이 시대 모습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_ 이영섭, 1998년 제3회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쓴 「작가노트」에서
        
1994년 이후 그의 작품 세계는 잠시 침잠(沈潛)에 든다. 신라 토우와 흡사한 <말>(1995), 동자승 같은 <어린부처>(1996), 개구쟁이를 표현한 <아이>(1998)는 그 이전의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 숭고미, 비장미를 찾을 수 없다. 형상에 내재된 시대와 현실도 없다. 규모도 줄어서 소품이다. 옛 조각들처럼 고졸하고 졸박하다. 토․아트 스페이스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의 작품들 <잉태>, <어머니>, <아버지>, <포옹>, <두상>연작, <아이-강>, <아이-산>(이상 1997)도 순박하고 단순하다. 흙-질감이 그대로인 테라코타지만, 돌로 깎은 투박한 벅수나 미륵을 닮았다. 큰 흙덩이에 몇 개의 선으로 형상미를 살렸다. 그의 침잠은 역설적으로 현실의 개벽이 아니라 조각의 개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조각 언어를 변신시키기 위해 그는 사실성의 형상을 내려놓고 시간의 두께를 꿰뚫는 초월적 시선으로 조형의 본질로 뛰어들었다. <어머니-울타리>와 <만강세월(滿腔歲月)>(1997)이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존재의 신산스런 삶의 숭고를 거대한 토템적 형상으로 빚어냈듯이 그는 원초적 형상, 가장 근원적인 형상, 시대를 초월하는 형상, 그럼에도 어느 시대와도 감응할 수 있는 형상을 궁리했다. 항상성(恒常性)의 미학, 감응의 미학, 감흥의 미학을!
그 항상성의 미학으로 현실과 교감하기 위해서 그는 욕망이나 거짓 따위가 없는 ‘절대순수’의 존재형상을 궁구했던 것 같다. ‘어머니’, ‘어린부처’, ‘아이’는 절대적 순수의 아이콘이다. 마야의 오른쪽 옆구리를 찢고 태어난 부처는 “온 우주에서 오직 나만이 홀로 존엄하다. 이 세상에 가득 찬 고통을 내 반드시 평정하리라.”(「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 했고, 스스로 잉태되어 마리아에게서 난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마가복음 10:14~15」) 했다. 어린아이가 천국의 주인이다. 그것은 하나의 법(法)이고 말씀이었다. 그가 세계의 개벽을 꿈꾸며 제작한 ‘민중’의 형상에서 ‘아이’의 형상으로 돌아선 것은 그런 형상이전의 ‘법[말씀]’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부처의 법이나 예수의 말씀은 사실 그가 처음부터 화두로 삼았던 민중의 실체이기도 하다. 민중이 깨어서 ‘어린아이’로 화생(化生)해야 개벽이 온다. 새 형상이 깨이니 정신도 깨었다. 어린부처가 평정하겠다고 말한 ‘세상에 가득 찬 고통’은 민중의 것이다. 신학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민중은 메시아 예수 사건의 ‘본질’이다. 이영섭은 형상을 흙으로 빚는 행위가 그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조형 방법론의 창조적 새 술수가 필요했다. 그가 빚어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잉태되어서’ 창조되어야 했다. 흙으로부터 스스로 솟아나야 했다. 
그는 1997년 개인전을 끝내고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의 고달사지(高達寺址)로 갔다. 천년 유물․유적들이 발굴되고 있었다. 그곳에 작업실을 열었다. 그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형태를 앞에 놓고 직접적으로 보면서 소조해 내던 내게 거꾸로 땅을 파들어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되묻고, “오히려 조각 지식에 대한 이탈적 행위로부터 시작하여 또 다른 조각방법을 창출해 내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신의 세 단계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것은 널리 알려진 대로,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단계이다. 간략히 요약하면 “짐을 넉넉히 질 수 있는 정신”을 니체는 ‘낙타’로 비유하고, 존재의 짐을 지우려 하는 “신에게 대적하려 하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그 거대한 용과 일전을 벌이려”하는 존재가 ‘사자’인데, 사자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 가치의 창조, 쟁취, 적어도 그것을 사자의 힘은 해낸다”고 말한다. 다음 단계가 ‘어린아이’이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이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 최초의 운동, 거룩한 긍정이다.”그리고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또 니체는 『아침놀』에서 “아직 빛나지 않은 수많은 아침놀들이 있다”는 말로 전통 철학과 도덕의 한계를 뛰어 넘는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여는데, 삶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철저하게 탐색하면서, “땅을 뚫고 들어가고, 파내며, 밑을 파고들어 뒤집어엎는” 두더지의 작업에 삶을 비유했다. 두더지가 땅을 파고드는 것처럼 은폐된 것을 파내는 사람만이 자신의 아침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고달사지 근처에 작업실을 두고 시간의 연속성을 사유했다. 천년의 유물들이 흙 속에서 드러나 현재와 만나는 순간들은 초시간적이었다. 유물들의 흙무덤이 열리는 순간 유물은 주검의 흔적에서 생성체로 돌변했다. 시간을 건너 온 그것들은 역사, 사건, 신화 등의 무수한 생기론적 상징어들을 쏟아냈다. “당시 발굴 현장을 바라보면서 시간성의 장엄함을 전율처럼 느꼈어요. ‘조각이 뭔가?’ 근본적 질문에 봉착하게 됐지요.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유의 과정에서 그는 “이미 죽어버린 것이 어느 날 새로운 생명체로 육화되는 경이로운 체험”과 함께 인식의 전환을 갖게 된다. ‘흔적[주검/과거/신화]’과 ‘생성[유물/현재/서사]’의 사건에서 아침놀의 황홀을 본 것이다. 그는 육화된 생명체야말로 미의 본질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비너스>(1998)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는 어린 부처의 모습과 형상이 거의 똑같다. 미의 본질로서 ‘비너스’는 어린 부처였고 아이였으며 어머니였다. 그는 작업실 마당의 마사토를 파 들어가 그 빈 곳에 시멘트(시멘트를 주재료로 한 혼합재료)를 붓고 그것을 발굴했다. 거기, 그곳의 흙 속에서 ‘형상’을 출토했다. 아니, 형상이 잉태되어 솟아났다. 
이원일은, 어찌 보면 그 콘크리트 인물상들이 출토되어 일어서는 과정이 그가 이전에 심취했던 운주사 미륵신앙에서 와불(臥佛)이 일어서는 개념과 궤를 같이 하는지도 모른다고 했고, 새로운 세상을 ‘세운다.’는 미륵사상이 동학사상으로 이어진 것처럼 이영섭의 인물상이 ‘뒤집는다.’, ‘세운다.’는 상징적 의미의 실천이라고도 했다. 또 최태만은 그의 첫 출토조각에 대해 “흙을 붙여가며 형태를 완성해 가는 것이 아니라 땅속에 묻혀있던 파편들을 조립하여 그 원형을 찾아내는 의사(擬似) 고고학적 방법을 통해 자기 발생적 형태를 찾아나가는 그의 과정은 역시간적 특징을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이영섭의 머릿속은 온통 ‘시간성’이었다. 심지어 그는 ‘시간의 전달자’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구분되지 않고 한통속으로 총체화 되는 고리, 순환, 생명, 문명, 승화, 그리고 이곳의 삶이 한 깨달음[一覺]으로 왔다. 시간은 어디로도 흘렀고, 조각은 스스로 흙에서 솟구쳤다. 어머니 대지의 태를 잇고 생성된 그의 작품들은 대지의 질감으로 충만했다. 여기 이곳에서 탄생했으나 수 십 억년의 대지가 낳은 것이므로 형상은 시간 너머의 느낌으로 충만했다. 인위(人爲)의 자궁에서 무위(無爲)의 형상이 창조되니, 작위(作爲)가 사라지고 시간도 우주적 사건이 되었다. 회통하는 카오스모스의 시간성이 깃들었다!

#3. 화출(化出)의 변신술과 상징의 알고리즘 ; 예술의 몸은 ‘예(藝)’가 본래 뜻하는 ‘심다, 기예, 궁극’의 생태적[심다], 창조적[기예], 철학적[궁극] 환(幻)의 술수(術數)로 탄생한다. 그러므로 예술이란 ‘예’의 생태성 ․ 창조성 ․ 철학성이 ‘술수’로 드러나는 실체적 ‘환(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2000년을 전후해서 그 이전 작품들을 크게 세 개의 주제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한 듯하다. 물론 세 가지 주제 외에도 그의 작품들은 더 다양하지만, 주제를 크게 묶어보면 그렇게 정리되는 양상이다. 의도되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 흐름으로 변화한 게 아닐까 싶다. 또 테라코타로 제작했던 초기 작품들 속에 이미 그 이후의 작품들이 예견되었다는 것을 지울 수 없다. 주제, 형상, 상징 모두. 
2000년 이후에 새로 제작한 <샘> 작업을 잠시 미뤄두고, 현재 진행 중인 1)미륵불(불상) 연작 2)소년&소녀상(우바새&우바이) 3)어린왕자 등을 초기 작품들과 비교해 보면 이미 거기에 그 징후가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그것을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초기 작품들이 현재의 작품들로 재편될 때 ‘불상’도 되고 ‘어린왕자’도 될 수 있는 중복성은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애초에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학적 사유는 운주사 미륵불과 만나 <불상>시리즈에 깊게 침윤되었을 것이다. 구체적 형상은 사라졌으나, 그 형상들이 상징했던 바를 미륵불 혹은 불상이 전유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부처>와 ‘아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작품들과 <외출> 등의 작품은 선한 남자, 선한 여자로서 우바새[善男], 우바이[善女]를 상징하는 듯하다. 또 종교적 의미보다는 순수의 의미로 ‘소년’과 ‘소녀’를 그는 많이 제작했다. <니트 입은 소년>, <분원소년>, <미소>(이상 2016), <붓꽃피다>, <청초롱>, <봄>, <소녀(블루)>, <새봄이>(이상 2017)는 수많은 작품들 중 단지 몇 개에 불과하다. 
<아이부처>를 비롯해 ‘아이’를 제목으로 단 작품들은 다시 <어린왕자>연작으로도 이어진다. 2016년경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어린왕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우바새, 우바이와 달리 피안의 세계를 매개하는 ‘매개자’라는 생각이다. 어린왕자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영원한 아이’일 것이다. 도솔천의 미륵이 현현한 존재이거나, 천국의 주인이 예지적으로 도래한 형상일 수도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이영섭에게로 와 어린부처가 되고 미륵이 된 것이다. 

#4. 모든 생명은 태생(胎生)·난생(卵生)·습생(濕生)·화생(化生) 중의 하나로 태어난다. 그것들은 깨치지 못하여 미혹(迷惑)의 세계에 살면서 육도(六道)를 윤회한다. 

출토를 시작한지 20여년이 흘렀다. 이제 이영섭의 조각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 고민의 깊은 우물 속으로 한줄기 빛이 번개처럼 쏟아졌다. 순간, 뇌리에서 ‘아공(我空)’이란 말이 터졌다. “중생의 신체나 정신은 인연의 법에 의해 화합된 것이어서 따로 영구적인 ‘나’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는 아공의 말뜻이 빛으로 환했다. 있으나 실체가 없다. 그 있고 없음의 이치가 ‘출토(出土)’의 사건이 벌이는 잉태와 텅 빈 자궁의 쉼 없는 조각적 윤회를 떠오르게 했다. 알을 깨고 박차 오른 아프락사스(Abraxas)의 ‘난생’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히 어머니 대지가 잉태하고 출산한 ‘태생’이었다. 그의 조각은 출생(出生)이요, 출생이어서 출토였다. 어머니 자궁에서 태어나듯 그의 조각은 대지의 자궁에서 솟아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조각은 ‘출토조각’이다. 발굴은 그저 출토의 한 과정에 불과할 것이다.
아공을 좀 더 미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나’를 벗고 ‘얼나’를 깨우치는 깨달음의 한 순간을 엿보아야 한다. ‘거짓 나’인 제나[ego]는 인연의 법이 만들어 낸 신기루다. 그러므로 영구적인 제나[自我]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아공은 실체 없는 제나의 불변(不變)에 대한 일갈이다. 제나가 ‘참나(眞我)’를 깨달아 흩어진 곳에 남는 것이 ‘얼나’다. 얼나만이 오롯하다. 이영섭의 조각론은 텅 빈 제나의 자궁에 얼나의 실체를 묻었다 꺼내는 작업이다. 그는 땅/흙을 파 들어가는 방식으로 비어있는 형상을 빚는다. 마음에 어떤 형상이 떠오르는 것은 연기론(緣起論)이다. 그 순간 만유(萬有)가 마음에 가득하다. 빈 형상을 빚을 때는 깊은 고요에 든다. 노자가 ‘도(道)’는 텅 비어 있으나 그 작용은 끝이 없고, 깊어서 마치 만물의 근원 같다고 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는 조각이라는 물성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얼나는 물성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성은 그저 태생의 산 증거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가 찾는 것은 물성에 깃든 얼나의 표정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은 그 표정을 선으로 긋거나 정으로 쪼는 행위에 있다. 얼나로서 그의 작품은 대지가 불어넣은 생령(生靈)의 한 기운이다. 다석 류영모는 “옷은 마침내 벗어 버릴 것이라 결국 사람의 임자는 얼(靈)이다. 사람의 생명에서 불멸하는 것은 얼나뿐”이라고 했다. 흙에서 솟아난 얼나의 형상과 표정은 그러므로 신명에 찬 민중이라 할 것이다. 깨어서 환한 미륵이라 할 것이다.    
연화화생이 아니라 토화화생(土花化生)이다. 흙의 육화다. 흙이 부처로, 미륵으로 상감되어서 현현하였다. 메를로-퐁티는 『행동의 구조』 이래로 육화라는 말을 넓게 사용하여 ‘의미’가 그것을 표현하는 ‘소재’에 내재해 있는 모양이라고 했다. “의미라는 것은 육화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정신과 실존과 주체가 인간의 신체라는 형태를 지니고서 출현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육화한 실존’이라든가 ‘육화한 주체’라는 표현을 썼다. 이영섭의 작품들이 그렇다. 그의 작품들은 흙 속에서 ‘형상’이라는 육화를 거치며 ‘의미’를 내포한다. 달리 말하면 의미가 형상으로 육화되어 출현하는 사건이 그의 작품이라는 얘기다. 이때 의미는 소재의 우연적 배열 속에서만 생겨난다. 소재야말로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다. 의미가 소재에 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흙 속에서 형상은 이영섭이 파 놓은 빈 공간에서 배열되지만, 그 공간이 형상을 강제하지는 못한다. ‘우연적 배열’은 출토조각의 중핵이다. 육화는 시멘트가 흙 속으로 흘러 들어가 우연적 배열을 거치며 탄생한다. 작가의 구상과 이 우연성의 결합이 새로운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다.  

#5. 샘과 유리알 사리(舍利) ; “가령 유희는 어떤 별의 천문학상의 위치, 바흐의 푸가 주제, 라이프니츠 또는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초심자는 고전음악과 자연법칙의 공식 사이를 유희 기호에 의해 대비할 수 있고, 숙달된 사람이나 명인은 유희를 첫 주제에서 무한편성까지 마음대로 진전시켰다.”

채집한 돌, 퇴적암, 깨진 기와, 도자기 파편…. 시멘트 혼합물을 붓기 전에 ‘흔적’이 되는 사물들을 먼저 넣었다. 출토된 뒤에 그것들은 파편적 사물에서 신화적 서사를 생성시키는 ‘시간 전달자’가 되었다. 이영섭은 자신의 사유를 사물에 투영시켰다. 그런데 그는 최근에 ‘오닉스(onyx)’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유리를 넣기 시작한 것이 첫 발단이었으나 유리는 시간이 지나면 배색(背色)이 탈색되었다. 투명하게 빛을 반사하던 유리들은 빛을 잃었다.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의 무라노(Murano)에서 유리 제작법도 배웠고, 돌아와서는 보석으로 가공하는 오닉스를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 마을에서 수입했다. 오닉스와 금으로 한 배색은 빛을 잃지 않기 때문이었다. 2017년 가을, 그의 작업실 마당에서 20톤의 오닉스를 보았다. 엄청난 양이었다. 단순히 유리를 대체하겠다는 발상이라기에는 너무 많았다. 왜 그는 오닉스에 집착하는 것일까? 아니, 질문을 바꿔보자. 왜 그는 꺼지지 않는 빛[光/火]을 원하는 것일까?    
오닉스는 마노(瑪瑙)다. 화산암의 빈 구멍[空洞]에서 석영-단백석-옥수 등이 차례로 침전해서 생긴 물질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불의 마그마가 지나간 어두운 빈 굴에서 수천 수 만년동안 서서히 생성된 유백색의 반투명한 오닉스가 꺼지지 않는 빛이라니!
오닉스와 금은 미륵불과 어린왕자의 몸으로 스며들어 장엄한 시간성의 상징이 되었다. 대지의 자궁에서 응결한 시멘트 혼합물이 대지의 사리라면 오닉스는 시간의 사리였다. 이 두 개의 상징이 한 몸에서 ‘장엄(莊嚴)’이 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테라코타는 불의 사리였으나 그 자체로는 불이 아니었다. 동학의 삼칠자 주문은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 願爲大降)”으로 시작한다. 그 뜻은 “지극한 기운이시여 불 지피소서, 크게 내려와 내 안에 지피소서”이다. 불은 한얼(혹은 하ᄂᆞᆯ)이요, 큰 ‘얼빛’이며, 하늘님이다. 대지의 자궁에서 잉태되는 ‘형상’은 실제의 불이 아니라, 지극한 기운의 얼빛을 받아 탄생하는 것일 테다. 그것이 하늘님을 모신 “시천주(侍天主)”이다. 사람이 곧 하ᄂᆞᆯ이다(人乃天). 꺼지지 않는 빛, 꺼지지 않는 상징의 불이 필요했던 것은 그런 맥락이 아닐까! 
2018년 그는 천년고찰 통도사에 6미터 높이의 어린왕자를 비롯해 반가사유상, 관세음보살상, 미륵불 등 40여 점을 세웠다. 불상이 없는 대웅전으로 유명한 통도사를 ‘얼빛’으로 가득 채웠다. 얼빛은 천진무구(天眞無垢)했고 그 무구(無垢)의 표정이 또한 여래였다. 여래는 여실히 오셨고, 진여(眞如)에서 오셨다. 그래서 그 모습이 ‘참모습[眞如]’이었다. 붓다와 어린왕자는 둘이 아니었다. 성속불이(聖俗不二)! 일여(一如)로 온통 하나였다. 
성속불이-일여의 다른 작업이 처렴상정(處染常淨)의 <샘>이란 작품이다. 오닉스가 한 방울의 물이 만들어 낸 빛이듯이, ‘샘’은 끊임없이 솟는 맑음이요, 본성이다. 유리알 같은 본성의 맑고 투명한 사리다. <샘>이 있어서 그의 작품세계는 다시 순환의 새 장을 여는 것 같다. 그것은 이영섭 작품론의 생태적 알고리즘의 한 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