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박함과 진득함으로 빚어낸 자연

이 재 언(미술평론가)

 

 

  이영섭 에게는 때묻지 않은 자연이 살아 있다. 그의 작품을 대하는 것 자체가 자연을 경험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자연이야 누구에게나 분유(分有)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날 그것은 공동의 선으로 합의가 된것이며, 미적 탐구의 궁극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느 누구에게서나 제몫의 자연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자연에서 너무나 많은 작위적이고 조작적인,위장된 부류의 것들을 보곤 한다. 더러는 분칠한 자연에 식상하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영섭의 자연은 풋풋함과 순수함이라는 면에서 더 진가를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영섭에게서 살아 있는 때묻지 않은 자연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의 자연은 화려하거나 빼어나거나 혹은 세련된 것이 아니다. 그저 소박하고 가식없는, 있는 그대로의 것이다. 그의 외모에서부터 풍기는 것이 그렇고, 그의 삶의 양식이 그러하며 또한 그의 조형세계가 그렇다. 그는 여주에서 줄곧 자라서 지금까지 한적한 터에 자리를 잡아 그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의 작업은 오래 전부터 거의 점토만으로 작업을 해 왔다. 테라코타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점토작업만을 일관해 온 터다. 사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의 점토 작업도 그의 일상의 한 단편, 아니 축소판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유유자적하는 모습은 마치 산사(山寺)의 수도자 같은 모습이면서도, 그는 무언가를 부지런히, 그리고 진지하게 생산해내는 장인을 연상키고 있다.

 조금 여담 같지만 필자가 몇 년 전 그를 방문하였을 때,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작업실, 거대한 장작 가마 등의 모두 그의 설계하고 직접 손으로 지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감탄한 바가 있다. 보통 재주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테라코타가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 규모의 작업이, 그것도 아주 흙맛을 잘 내면서 빚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라코타야 크기를 떠나 밀도와 흙맛을 더 중시하는 것이면서도, 크기와 포즈 성형의 문제는 언제나 아쉬운 대목으로 남곤 한다. 아마도 걸출한 점토작가가 잘 나타나지 않는 것도 이 문제가 항상 따라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서는 크기나 성형의 문제가 그다지 큰 장애가 되지 않는 듯하다. 모두가 이천 여주 도자예술의 전통과 환경에서 오는 것이며, 그런 환경적 요인들을 그의 타고난 감각이 잘 흡수한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끼’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작업은 전부터 중후하고 밀도 있는 인물상을 줄곧 해 왔다. 조금은 종교적 경건주의 같은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는 가운데 토속적이고 담백한 정취를 드러내곤 했다. 더러는 설치 같은 작품으로 가변적인 연출과 공간해석을 시도하곤 하였으나, 대체로 견고한 조각적 매스와 중후한 인상은 그만의 세계로 고착이 되는 듯하였다. 그런 그의 작품세계가 최근 벼화를 보이고 있다. 비교적 사실성에도 충실하여 테라코타의 형태와 동세의 극한에 도전하는 것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흙 자체의 질박한 정서와 내면의 표현에 비중을 둔 작품들로 전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근작들은 다분히 아르카익한 포즈와 프리미티브의 투박함을 강하게 띠고 있다. 무언가 대상의 외양을 핥고 마는 것 같은 사실성에서 벗어나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자신의 심리기저에 쌓여 있는 어떤 앙금까지도 토로하고 투사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운주사의 석불들을 연상케 하는 인물상들은 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특히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을 밀도 있게 담고 있다. 한 가족의 조그만 가족사를 단편 적을 보여 주면서도 혈육 간에 놓여 있는 사랑과 정을 자연스럽게 술회하듯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혈육 안에서 가질 수 있는 초월의 감정과 불가사이한 진한 인연과 인간미를 진지하고 정감있게 담아내고 있음이다.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관조가 농축되어 있는 이번 작업은 다소 긴장되어 있었던 이전의 작업 세계와는 다른 여유와 농도 짙은 서정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확실히 새로운 면모이면서도 진정한 자기 반영으로 기록 될 것이다. 더욱 자연에 깊이 다가서서 전해주는 메시지는 인간 세계의 애욕에 휩싸여 더러 근원을 망각하곤 하는 우리에게 청량감을 주고도 남을 것들이다.